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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별고사] [필독서 따라잡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은 세상의 작은 존재일 뿐이다'

거대주의와 물질주의에 맞선 새로운 미래 모색해야
E. F. 슈마허 지음, 이상호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대입논술출전 ‘2022학년 경희대 논술우수자전형 사회계열 2-2문항’

환경, 경제, 국제 정치를 아우르는 20세기의 고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원제 Small Is Beautiful-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는 환경운동의 역사에서 최초의 총체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E. F. 슈마허의 역작이다. 1973년 첫 출간된 이래 성장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며 단숨에 시대의 문제작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모두가 자본주의 문명의 화려함과 물질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처럼 동경하고 있을 때 이와 정반대의 시각에서 작고 소박한 것의 가치를 역설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단순한 제목만큼이나 그 울림은 선명하고 강렬했다. 

E.F. 슈마허의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이자 이상으로 여겨지던 거대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E.F. 슈마허는 특히 거대주의와 물질주의가 현대인들에게 미친 영향에 주목한다. 거대주의와 물질주의를 내면화한 현대인은 그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과 사유를 조율했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여겼고 부가 계속 늘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더 크고 많이,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생산을 늘리고 부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믿음과 행동이 너무나도 강력하게 작용해 다른 가치들은 그 뒤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러나 거대주의와 물질주의가 그리던 장밋빛 미래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속속 드러냈다.

거대주의와 물질주의의 이상이 실현되어 가는 것과 동시에 부자와 가난한 자, 도시와 농촌, 교육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고 각종 범죄, 테러, 공해, 자원고갈 등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현대인들은 심각한 좌절과 소외에 절망했고, 범죄, 현실 도피, 정신적 죽음 등의 전에 없던 또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연을 보호하고 협정을 체결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E.F. 슈마허에 따르면 이제 현대인은 완전히 ‘뿌리 뽑힌’ 존재가 되었다. 크기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류 경제학의 타성을 전복하다>
E.F. 슈마허는 가장 먼저 경제학의 위상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학의 위상은 단순한 하나의 학문 그 이상이며 경제는 물론 비경제적인 영역에서도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효율성과 성장을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은 거대주의, 물질주의 조류와 맞물려 종교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정작 그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책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경제학과 생활수준은 자본주의 체계로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와 폭넓은 의미에서 생활은 질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계 때문에 오로지 파괴될 뿐”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경제학은 자연과 자원의 가치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않고 숫자로 환원하는 데만 집중한다. 화석연료를 비롯해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자본은 자본으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놀랄 만큼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자연 자본의 현실을 외면한 채 생산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경제학은 재화와 서비스를 놓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만나는 시장을 보고 있을 뿐,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한하지 않은 자연과 자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숫자로만 치환하는 경제학은 인류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E.F. 슈마허의 진단이다. 

E.F. 슈마허의 경제학 비판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질주하는 과학 기술 비판으로 이어진다. 근현대 기술은 인간의 수작업을 대체했다. 그 결과 생산에 실제 필요한 시간은 총 사회적 시간 중 적은 부분으로 축소되었고 작업에서 비롯되던 인간적인 만족감도 소실되었다. 저자는 교육, 토지 이용, 산업, 개발과 발전, 국제 원조, 화석 자원과 원자력, 도시와 농촌, 실업 등 현대 사회의 병폐가 누적되어 드러난 다양한 현실을 살피며 현대 사회가 모든 문제를 거대한 기술로만 해결하려 하는 점에 대해 우려한다.  

<불교경제와 중간기술을 제안하다>
E.F. 슈마허는 거대주의와 물질주의, 그와 짝을 이룬 경제학과 과학 기술의 문제를 극복하고 작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을 중시함으로써 달라질 새로운 세상을 무작정 주장하지만은 않았다. 그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할 도구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냈다. 불교경제학(Buddhist Economics)과 중간 기술(Intermediate Technology) 등이 대표적이다. 

불교경제학은 이름 그대로 소박함과 비폭력을 강조하는 불교에 경제학을 접목한 것이다. 불교의 팔정도 중 하나인 올바른 생활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E.F. 슈마허에 따르면 불교경제학은 ‘최적의 생산 패턴’으로 소비를 극대화하려는 주류 경제학과는 달리 ‘적절한 소비 패턴’으로 인간의 만족을 충족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저자는 불교가 형이상학적 맹목성에 사로잡힌 주류 경제학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노동을 예로 들면 주류경제학에서는 노동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계화와 분업을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근육운동 수준이 되어버리고 개인이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다. 반면 불교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자기능력을 발휘하고 향상시킬 기회, 다른 사람과의 공동 작업으로 자기중심으로 극복하는 것,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본다. 불교에서 문명의 본질을 욕망의 증식이 아닌 인간성의 순화로 이해하는 것처럼,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인간성을 형성하고 노동을 통해 성장과 활력을 얻는다. 다시 말해 노동을 가급적이면 하지 않아야 하는 여가의 대립개념이 아니라 노동과 여가를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불교경제학에서는 노동 대신 소비, 혹은 최대의 소비를 지향하지 않는다. 소비는 적절한 수준으로 한정된 자원과 생태계의 유지를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적절한 소비는 압박감이나 긴장감 없이 생활하면서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라”는 불교의 첫번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된다. E.F 슈마허의 불교경제학은 경제적 재화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의 소박한 만족감에 초점을 두는 새로운 경제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간 기술은 말 그대로 이른바 선진국의 자본집약적인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토착기술의 중간에 해당하는 기술이다. 전통적인 작업장을 파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대량 생산 기술의 폐해가 없으면서도 토착기술보다 생산성이 높고 우수하다. 인간의 손과 머리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량 생산보다 대중의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집약적인 기술과 토착기술 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중간 기술을 역설한다. 중간기술을 활용하면 단지 생산과 금융의 증대 외에 교육, 역량 등의 선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중간기술은 선진국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거대 기술을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억지로 적용하는 대신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술의 직접성과 단순성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E.F. 슈마허는 중간기술이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의식주의 영역이나 농업을 중심으로 그들의 자립을 돕는 방향으로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유의 전환을 촉구하다>
불교경제학이나 중간 기술 같은 상상력이 실현되려면 또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작은 규모의 조직이다. E.F.슈마허는 ‘규모의 경제’라는 프레임을 거부하고 작은 조직이야말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작은 조직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고 여전히 인간을 중심으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 일개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쉽고 나와 그들을 분리하여 생각하게 된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직접적인 접촉,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은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킨다. 

저자는 대규모 조직은 집중화와 분산화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며 거대한 조직 안에서도 소규모 조직, 특히 기업에서는 반자율적인 단위조직으로서의 준기업을 확보하는 것이 근본적인 과제임을 강조한다. 또한 상위집단이 하위 집단의 기능을 빼앗아 버리면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향하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실제 소규모이면서도 큰 성공을 거둔 영국의 민간기업 스콧 베이더를 예로 들어 작은 조직이 어떻게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지 않고 모두를 위한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지 집중 조명한다. 어니스트 베이더가 1920년 가족과 함께 창립한 스콧 베이더는 아이들의 장난감 바람개비를 만드는 플라스틱 생산을 시작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30년만인 1951년 스콧 베이더 공동체를 설립, 베이더 가족 소유의 주식을 양도하여 직원 소유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스콧 베이더 공동체는 직원의 수, 직원간 보수 격차를 비롯하여 분배와 회사 운영을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해 공동소유를 강제했다. 외부의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스콧 베이더는 성장을 거듭했고 몇차례 규정을 개정하며 2023년 현재 18개 지사와 7개의 공장에서 800여명이 근무하는 탄탄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스콧 베이더의 성공 사례를 기반으로 소유권, 국유화 등의 정치 경제적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결국 E.F 슈마허가 주장하는 것은 생산의 논리가 아닌 도덕적 선택이다. 과학과 기술은 그 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인간은 논리가 아닌 진리에 의해 구속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혜, 정의, 용기, 절제와 같은 진리야말로 여전히 유효하며 그 중에서도 폭넓은 지혜는 나머지 3가지 진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각자 그리고 더 큰 단위에서 지혜를 배우고 나누는 것이 문명을 존속하게 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울림은 5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김지영 편집위원

■ 책의 구성 

개정판 옮긴이 서문

1부 근현대 세계
1장 생산 문제
2장 평화와 영속성
3장 경제학의 역할
4장 불교경제학
5장 규모 문제

2부 자원
6장 최대의 자원, 교육
7장 적절한 토지 이용
8장 산업 자원
9장 원자력은 구원인가, 저주인가?
10장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3부 제3세계
11장 발견
12장 중간 기술 개발을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
13장 200만 촌락
14장 인도의 실업 문제

4부 조직과 소유권
15장 미래를 예언하는 기계?
16장 대규모 조직을 향하여
17장 사회주의
18장 소유권
19장 새로운 소유 형태

후기
주석

 

■ 밑줄 긋기
# 근현대 사람들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할 운명을 타고난 외부 세력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이들은 자연과 싸운다고 말하는데 이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결국에는 자신이 패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최근까지 이 싸움은 인간의 힘이 무한하다는 환상을 가져왔을 정도로 인간에게 유리해 보였지만 완전한 승리의 가능성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그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는데 아직은 소수파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싸움이 인류의 지속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과학 기술의 경이로운 성과에 힘입어 무한한 힘에 대한 환상이 생겨났고 이는 동시에 생산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환상을 낳았다. 후자의 환상은 가장 중요한 곳에서 소득과 자본의 구분이 실패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18쪽 1장 생산문제)

#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사회 구조와 인간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과학적, 기술적 ‘해결책’은 아무리 훌륭하게 고안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어떠한 혜택도 없다. 대형 기계화는 경제력이 점점 더 집중되고 환경이 점점 더 파괴되는 상황을 동반하므로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 기계화는 지혜에 대한 하나의 부정이다. 지혜는 과학과 기술에 유기적인 것, 부드러운 것, 비폭력적인 것,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향해 새롭게 나아가기를 요구한다. 흔히 말하듯 평화는 분할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자비한 과학과 폭력적인 기술 위에서 어떻게 평화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파괴적인 움직임을 역전할 발명이나 기계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42쪽 2장 평화와 영속성)

# 오늘날 경제학에 응용되는 경제 계산은 기업가가 인간 요소를 배제하길 강요한다. 기계는 인간처럼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계화와 대형화를 위한 엄청난 노력이 나타나는데 이는 팔 것이라고는 자신의 노동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장 약한 교섭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오늘날 경제학이란 이름 아래 교육하는 내용에 담긴 상투적인 지혜는 가난한 사람들, 그것도 실질적으로 개발이 필요한 바로 그 사람들을 외면한다. 거대주의와 기계화의 경제학은 19세기적 조건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오늘날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조금도 없다. 재화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관심에 기초한 완전히 새로운 사고 체계가 요구된다. (재화는 자연히 뒤따라 나올 것이다!) (90쪽 5장 규모 문제)

 

# 영혼과 생명을 파괴하는 19세기 유산인 형이상학을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확신하건대, 우리 세대의 임무는 형이상학을 재건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안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의 정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우리의 임무이자 모든 교육의 임무는 오늘날의 세계,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교육의 문제는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 문제는 조직이나 관리 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이들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므로 치료법도 형이상학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근본적인 확신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교육은 단순한 훈련이거나 방종이다. (123쪽 6장 최대의 자원, 교육)

# 일자리 수를 고려하지 않고 산출량이나 소득에 비추어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경제 계산은 여기서 고찰하는 빈곤 조건에는 조금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제 계산은 개발 문제에 대한 정태적인 접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동태적인 방법은 사람들의 욕구와 반응을 고려한다. 사람들의 첫 욕구는 아무리 작은 규모라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과 노동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이를 좀 더 값지게 만드는 데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것은 소수가 상당히 많은 것을 생산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설령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에서 전자의 총산출고가 후자보다 줄어들더라도 그러하다. 물론 이는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동태적인 상황이므로 계속해서 산출고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213-214쪽 12장 중간 기술 개발을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

# 어떻게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공공 부문의 빈곤이, 그것도 1인당 국민 총생산이 두드러지게 적은 국가들에서보다 훨씬 심하게 나타날 수 있을까? 경제가 현재의 미국 수준으로 성장하더라도 공공 부문의 빈곤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악화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성장’할 때 공공 부문의 빈곤이 완화되거나 제거되리라고 어떻게 이성적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서 공해가 가장 심하며 또한 놀랄 정도로 심한 공공 부문의 빈곤 때문에 피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가령 영국의 국민 총생산이 5퍼센트(즉 1년에 약 20억 파운드) 정도 증가한다면 이렇게 늘어난 부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이용해서 ‘국가의 소망을 달성’할 수 있는가? 

단언하건대 불가능하다. (333-334쪽 19장 새로운 소유 형태)

# ‘생산의 논리’는 생명의 논리도, 사회의 논리도 아니다. 오히려 이 두가지 논리의 일부이자 이들에 종속된 것에 불과하다. ‘생산의 논리’에 힘입어 해방된 파괴력을 제어하려면 이 논리 자체를 억제해서 파괴력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치명적인 장치를 생산하는 일이 인간의 창조력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한 테러 행위를 억제해본들 거의 소용이 없다. 또한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따라야 할 우주 법칙이 있는데, 생산 양식과 소비 양식이 이 법칙에 부합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대하면서도 복잡하고 폭력적인 모습(이러한 경향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을 보인다면 오염과 벌이는 싸움도 성공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만큼이면 충분하며 이 선을 넘어서면 악이라는 사고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한, 자원 고갈 속도를 늦추거나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확보할 수 없다. (359쪽 후기)

 

◼ E. F. Schumacher (1911-1977)

독일계 영국 경제학자. 본명은 Ernst Friedrich Schumacher.  

독일 본에서 태어나 본과 베를린에서 성장했고 1930년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교 뉴칼리지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나치의 박해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부터 20년간 영국석탄공사 경제 자문 역할을 맡은 것을 비롯해, 토양협회 의장, 민간 기업 스콧 베이더의 이사 등을 역임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복지 정책의 기초를 닦았다. 

이론과 실천을 결합해 세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커다란 관심을 가졌으며 195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컨설턴트로 미얀마와 인도를 오가면서 고안한 불교경제학과 중간 기술 등 혁신적인 경제 철학과 기술 개념을 개진하여 거대주의와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앞장섰다. 1966년에는 Practical Action으로 알려진 중간기술개발그룹을 설립하기도 했다. 

타임지가 선정한 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저술에 이름을 올린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1973년 발간하여 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4년에 대영제국 지도자 훈장(CBE)을 받았다. 이외에도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A Guide for the Perplexed 1977)’를 비롯해 사후에 출간된 ‘굿 워크(Good Work 1979)’ 등을 통해 주류 경제학의 타성에 젖은 인류의 생각을 바꾸는데 힘썼다. 

1977년 스위스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 등록일 : 2023-08-16 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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